Saladin’s Blog

현실, 이상, 그리고 IT. 그 세가지 세계관에 관하여

Posted on: 5월 19, 2006

논의점의 하위파생개념들을 너무 급진적으로 카테고리화 시키는 스타일이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한 서술들이 많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우려섞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내 생각과 교차되는 부분도 여럿 보인다

 

*출처 : ZDNet

 김국현 (IT평론가)

 

전혀 다른, 때로는 심각할 충돌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배타적 개념들이 하나의 범주 안에 태연히 놓여 있곤 한다. 

IT가 그렇다. IT 속에서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의 배타적 세계관을 만나게 된다. 

먼저 현실계의 IT. 양복을 차려 입은 컨설턴트에게 IT란 현실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비즈니스에 부가가치를 부여하며 경영 위기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도구다. SOA를 떠들고, ERP를 도입하고, 프로세스를 모델링한다. IT는 설령 자신이 부품으로 소모되는 일이 있더라도 비즈니스의 동반자를 자처하며 현실을 강화하려 든다. IBM, 마이크로소프트, HP 등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벤더, SI 업자가 주모자다.

 

다음으로 이상계의 IT. 청바지를 입은 웹기획자에게 IT란 우리 삶을 흉내내기 위한 공간이다. 그들은 웹2.0을 떠벌리며, 현실의 산업들을 대체할 이상적 세계를 꿈꾼다. 신문, 방송, 영화, 음악 등 현실의 기득권 산업을 붕괴할 형이상학적 세계를 만들고 싶다. 그들에게 더 이상 IT는 경영의 시녀가 아니다. 구글, 야후 등 닷컴과 포탈들은 현실을 모방하고 대체할 이상 세계를 꾸려 가려 한다.

 

그리고 환상계의 IT. 반바지를 입은 게임프로듀서에게 IT란 이 삶 밖의 세계를 의미한다. 꿈꾸는 세계, 환각의 판타지. 은둔해서 칩거하기 위한 대안적 세계. 그들이 만드는 세계에 이 각박한 현실은 아예 흔적도 없다. IT는 현실을 아예 초월한 꿈의 세계를 만든다. 현실의 이방인 대신 폐인을 선택한 그들. 이 세계 속에 사는 이들에게 이미 현실은 가까이 하기 힘든 타자다. MMORPG는 현실에 대한 유희적 거부다.

 

뭉뚱그려 IT라 한마디로 부르기에는 너무나 다른 방향을 쳐다 보고 있는 자 들이 등을 맞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가지 IT는 다른 성격의 인재들에 의해, 닮았지만 다른 기술에 의해, 방향이 다른 기업들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 실로 묘한 균형이다.

 

어찌 보면 세 가지의 다른 문명이다. 어느 문명에 속한 특정 기업에 애착을 보여 가치관을 동조해 버리거나 다른 문명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기도 한다. 문명 충돌을 연상시키고 만다.

 

특히나 요즈음,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데, 이상계의 팽창, 환상계의 폭주, 그리고 현실계의 피습이라는 불균형 현상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닷컴 버블 이후, 웹은 그저 웹에 불과할 뿐이라는 패배감을 상식으로 가지게 되었다. 뉴 이코노미니 신세대니 떠들어 봤지만, 역시 이 세계는 종래의 기득권 산업에 의해 움직인다는 일종의 자괴감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 치욕이 필연적으로 불러 들일 수 밖에 없었던 역습. 다시 한 번만 더 웹. 바로 웹 2.0이다.

 

실패한 혁명이여 다시 한 번만. 많은 이들이 웹 2.0에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 혁명의 피비린내가 가시지도 않은 지금, 지난 혁명을 반추할 여유조차 지니지 않은 채, 또 다시 비슷한 혁명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상계의 유혹은 강렬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상계가 결코 그저 이상 만은 아님을 알고 있다. 이미 네트워크를 통해 가치가 국경을 넘나든다. 전자화된 파생 상품이 창궐하는 오늘날 금융의 세계. 모든 가치가 네트워크 위에서 증권화되는 세계. 이미 우리 세계 자체가 완전히 네트워크 상에 투사될 수 있는 형태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벌리즘은 이 변질에 의존하고 있다. 현실계에 아무런 물리적 흔적을 남기지 않더라도 현실계의 가치를 끌어 갈 수 있다. 구글의 애드센스조차 이를 가르쳐 준다.

한편 환상계는 이제 그저 한낱 놀이가 아니다. 은둔형 외톨이는 현실의 낙오 대신 환상의 영웅을 꿈꾼다. 현실에선 소극적 도피자라 불리지만 환상 속에서는 적극적 참여자다. 현실보다 우월한 환상이 제공될 수 있음을 많은 이들이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리니지 작업장을 보자. 이러한 부작용이 나올 정도로 현실의 가치가 역류하고 현실을 뒤틀고 있다. 환상계는 폭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 폭주의 목적지는 현실계다. 환상계의 매력이 중독성이 될수록.

 

현실계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이상계의 팽창에 감화되어 구글을 닮은 윈도우 라이브를 만들거나 환상계의 폭주가 지닌 매력을 찾아 비스타의 인터페이스를 게임처럼 바꾸고 있다. IBM은 사실상 웹2.0 축제였던 오라일리의 Etech 2006 컨퍼런스에서 최고 수준인 다이아몬드 스폰서를 자처했다. 이들은 현실계의 피습을 직감하고 있다. 이들 현실계 선수들이 SOA를 주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SOA야 말로 현실계에 속한 기업들이 이상계 풍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총체적인 방책이기 때문이다. 유비쿼터스란 또 무엇을 말하는가, 현실계 그 자체를 이상계와 구분하지 못하게 하자는 현실계의 주장 아닌가?

 

나는 졸저를 통해 우리 세상이 IT에 기대하는 바는 계산, 모방, 가상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양복을 차려 입고 현실을 ‘계산’해 내기도, 현실을 ‘모방’한 짝퉁을 웹상에 만들어 오리지날을 붕괴시키기도, 현실 도피적 ‘가상’ 세계를 만들어 현실에 좌절한 이들에게 환각의 기회를 줄 수도 있는 것이 IT가 지닌 힘이다.

 

세계가 팽창하거나 폭주하고 또 침범 당하는 일은 어떤 힘이 천정을 칠 때 목격되는 주기적 현상이다. 웹2.0이니 SOA니 유비쿼터스니 다들 뭐라 한마디씩 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의 상황이란, 너무나 강렬하고 때로는 초현실적인 이 IT의 영향력을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탓이다.

 

하루에 17시간 모니터 앞에서 게임 훈련을 반복하는 프로게이머란 인종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펼치는 플레이를, 어떤 청년이 DMB 폰을 통해 보고 있다. 이 초현실적인 풍경을 통해 나는 현실과 이상과 환상조차 언젠가 뒤섞고 말 IT의 힘을 다시금 상상하고 만다. @

Advertisements
태그: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일자별 보기

5월 2006
« 2월   9월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최근 사진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