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adin’s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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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0여년 전에 컴퓨터가 우리의 일상과 완전히 밀접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컴퓨터에 관한 문제는 말그대로 기술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고 특히 우리나라는 소위 ‘정보화’라는 표제아래, 인문학의 기반성장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터넷과 하이퍼 텍스트, 그리고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기술만을 진보시켜 그에 따르는 꽤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사전고찰이 없이 그것을 진행해 왔다고 보인다. 그런면에서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유비쿼터스는 원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와 맞물려 온라인 패러다임이 내내 추구했던 본질이었으며 작금의 사회학자들이 웹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이미 오래전 제시했던 개념이었다. 

새로나온 혁신적인 개념인 것처럼 보여 대중은 최신 휴대폰의 기능을 보고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 할 뿐, 따라서 그것이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중 역기능에 대한 통제가 국가차원에서 관리되더라도 이용의 주체인 대중들이 따라가주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현실이다.

 

*출처: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종말/배식한/책세상문고/
선택적 부분발췌

하이퍼텍스트는 우리의 일상생활과 매우 닮았다. 나는 매순간의 선택을 통해 어떤 경로를 만들어간다. 이것이 나의 하루 생활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쇼핑센터를 상상해보라. 거기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중에서 당신은 어느회의 어떤 재품을 살것인지 결정해야한다. 하이퍼텍스트의 독자들도 이와 비슷하다. 텍스트의 어떤 지점에 가면 독자에게 선택지가 주어진다. ‘다음에는 무엇을 읽으시겠습니까?’라고 하이퍼텍스트는 반복해서 묻는다.

독자들은 이 반복되는 질문에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할 것이고, 각기 나름의 경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선형성[순서없이 많은 방향에서 접근가능함]이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식으로 텍스트를 읽는 하나의 정해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다음에는 무엇을 읽으시겠습니까?’란 질문을 받은 독자가 그 대답으로 내리는 결정에 따라 자료들을 관통하면서 짜이는 ‘거미줄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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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종말/배식한/책세상문고
선택적 부분 임의발췌

인터넷의 불 같은 성장에 기름을 끼 얹었다고 할만한 것이 바로 월드와이드웹이다. 인터넷을 대학교나 컴퓨터 관련 종사자들의 전유물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도구로 탈바꿈시킨 것이 월드와이드웹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웹이 등장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주로 이용되던 것은 전자우편을 비롯해, 텔넷, FTP, 뉴스그룹,고퍼등 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명령어와 약호 그리고 뭔지 모를 선택사항 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런것에 비하면 닻에서 마우스를 놓고 클릭하면 다른 문서로 넘어가는 웹의 하이퍼 텍스트 방식은 우리의 직관에 너무나도 잘 맞았다.
물론 하이퍼 텍스트와 인터넷의 만남의 첫 싹은 1991년에 나온 고퍼에서도 보였다. 고퍼는 책의 목차와 같이 접근 가능한 주제들의 목록을 제일 먼저 보여준다. 그 주제들 중의 하나를 마우스로 클릭해서 선택하면 그 주제의 하부 주제들이 다시 목록으로 나타난다. 이 하부 주제들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다시 하부 제목들이 나오고…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우리는 선택한 본문을 보게 된다. 명령어를 직접입력하지 않고 마우스 클릭만으로 원하는 자료를 찾고 구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고퍼는 등장한 직후 1991년과 92년에 ‘반짝’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끈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위계 구조 뿐이고 또 문자만 사용할 수 있어 카탈로그 기능으로써는 훌륭하지만 창조성, 유연성, 미적 스타일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윈도가 운영체제로 등장하지 않았던 그 당시 컴퓨터 인터페이스 수준으로는 고퍼가 최선의 선택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인터넷과 하이퍼 텍스트의 만남의 본격적 결실의 싹은 고퍼의 탄생보다 2년이 빠른 1989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 소립자물리학연구소The European Laboratory for Particle physics(CERN)라는 엉뚱한 곳에서 돋아나고 있었다. 여기서 일하던 팀 버너스리 Tim Berners – Lee가 고에너지 물리학을 연구하는 동료 연구원들 사이의 정보 공유를 도와줄 목적으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다.
‘행성 지구를 위한 거대한 전자 두뇌’를 발명한 사람인 버너스리의 두뇌는 어떨까?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한다고 한다. 그것이 웹을 발명하라고 하늘이 그에게 준 불편이었을까? 1980년에 그는 자신의 그러한 머리가 쉽게 연상작용을 하도록 도와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거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근 10년이 지난 1989년, 그때의 그 시도는 세계를 평정할 하이퍼 텍스트 시스템으로 변모해 등장한다.
그 당시에는 이미 앞에서 본 것 처럼 정교한 하이퍼 텍스트시스템들이 많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스템의 세부 기능을 개량하는 데만 신경을 썼지 그 시스템을 전세계 사람들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 확장 시킬 엄두는 못내고 있었다. 버너스 리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하이퍼텍스트 전시회에 가서 그것을 개발한 사람들에게 그 시스템을 전 세계화 시킬수는 없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개발자들은 자기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하이퍼텍스트 문서가 그 시스템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기를 원했다. 그 당시 시스템에서는 한 문서가 지워지만 다른 문서에서 그 문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끈들도 함께 지워져 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이퍼텍스트 문서에 ‘끈 떨어진 연결’이 있는 것에 용납하지 못했다.
버너스 리는 방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끈 떨어진 연결이 문제이긴 해.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는 이것이 전 세계적인 하이퍼텍스트 시스템, 즉 웹을 만들기 위해 치러야 할 불가피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기존 하이퍼 텍스트 시스템에서 소중하게 보듬고 있던 또하나의 훌륭한 기능도 포기 했다.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새로운 끈을 마음대로 추가해서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기존 하이퍼텍스트 시스템과는 달리 웹은 정보를 제공하는 쪽과 그것을 읽는 쪽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독자는 그 문서를 읽을 수 있을 뿐 그 문서를 마음대로 편집하거나 그 문서에 새로운 닻을 내려 다른 문서로 끈을 이을 수는 없다. 다만 자기 자신의 문서를 작성하고 거기에 닾을 만들어 거기서 자기가 읽은 문서로 끈을 이을 수 있을 뿐이다. 즉 웹에서의 끈은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 이어진다. 나중에 작성된 문서로부터 이미 있는 문서로의 일방적인 연결.
이 두가지의 포기는 그렇지만 저자와 독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우선 끈은 이어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저자의 글쓰기 부담이 줄어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끈은 모두 뒤에 오는 독자의 몫이 되게 함으로써 나중에 오는 독자들은 누구든지 잠재적 저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했다. 더 큰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라 할까?
이 새로운 시스템을 뭐라고 부를까? 정보그물infomech? 아니야. 이건 정보쓰레기Infomess처럼 들려. 정보 광산 The infomation mine? 줄요서 TIM? 이렇게 하면 내 이름을 노골적으로 땄다고 비난 할 꺼야. 월드와이드웹 World Wide Web이 어떨까? 줄여서 WWW. 이 이름이 어떤지는 그는 아내와 동료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당장 반응이 왔다. “더블유더블유더블유가 월드와이드웹보다 발음하기가 더 어렵다, 야!”
월드와이드 웹은 첫째, 다른 문서로 연결되는 닻들이 본문 속에 들어 있고, 둘째, 그래픽, 오디오, 비디오등 어떤 것도 들어올 수 있으며, 셋째, 지구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웹을 지탱하는 세 주춧돌은 문서를 작성하는 언어인 HTML, 문서를 연결시켜주는 시스템인 HTTP그리고 문서의 주소와 위치를 알려주는 URL(Universal Resource Locator)이다. 이 중 특히 URL은 단순히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하던 IP의 주순을 한 차원 넘어 서로 다른 컴퓨터들 속의 문서들을 바로 연결하는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
웹은 버너스 리가 발명했지만 그 발명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은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만든 웹 편집기와 웹브라우저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렇게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던 웹이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기폭제가 된 것은 미국 일리노이스 대학의 NC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에서 1993년 1월에 가발한 ‘모자이크Mosaic’라는 브라우저였다. 모자이크는 그림과 글자를 같은 창에 한꺼번에 보여줌으로써 종전의 글자 중심의 단조로운 화면에 익숙한 사용자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모자이크가 발표될 당시 50개에 지나지 않던 HTTP서버가 그 해 말에는 500개로 늘어났다. 모자이크 개발의 핵심 주역이었던 마크 앤드리슨 Marc Andressen 은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는지 그 해 12월 NCSA를 나와 짐 클라크와 함께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그 다음해의 성장은 더욱 눈부셨다. 1994년 웹은 말그대로 폭발했다. 그 크기가 3천배나 커졌다. 그리고 1994년 말, 앤드리슨의 회사에서 넷스케이프를 출시 했는데 이겄이 순식간에 거의 모든 브라우저 시장을 잠식했다. 돈을 번것은 버너스 리가 아니라 앤드리슨 이었다. 넷스케이프와 함께 월드와이드 웹은 대중 속으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6~7년이 흐른 2000년, 월드와이드 웹으로 대변되는 인터넷은 좋든 싫든 우리 바로 옆으로 다가와 우리의 생활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보편적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한 넬슨의 재너두 프로젝트가 30여년 간 애써왔던 일을 월드와이드 웹은 10년도 안되어 근접하게 실현해낸 것이다. 이를 제 2의 구텐베르크 혁명이라고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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